엘리트 스포츠와 승부조작 파문
학교는 선수들이 지성·감성 발달을 추구하는 곳이 아닌,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스포츠시스템에서 거쳐가는 곳일 뿐
또 한차례 체육계가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축구계를 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승부조작 파문에 이어 이번엔 그 여파가 배구코트와 야구장까지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배구연맹은 프로축구연맹의 선례에 따라 해당 선수를 제명시키는 강수로써 사건 진화에 나서고 있다.
1%와 99%. 한반도를 떠나 세계적으로 경제·정치·사회 분야에서 통용되는 근래의 핵심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안목을 넓힌다면 이 공식이 우리나라 체육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선 1% 미만의 운동선수들과 99%의 비운동선수들을 갈라놓는 벽만이 존재할 뿐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스포츠교육은 전문성을 증진시킨다는 명목 아래 엘리트 스포츠란 틀 안에서 운동선수들에게 입상 등 성과지향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운동능력 향상만을 요구해왔다.
성적지상주의, 학력지상주의가 전제가 된 공간에서 입상이라는 일원화된 목표를 지닌 운동선수들에게, 교육은 ‘선운동 후교육’이란 관념에 입각해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성장기의 유·청소년 교육을 책임져야 할 학교는 운동부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는 명목 아래 선수들을 다수의 학교수업에서 제외시켰고, 엘리트 스포츠의 산물인 숙소생활은 부모가 이행해야 할 가정교육의 의무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육에 대한 책임은 자동적으로 운동부 지도자들에게 전이되어왔다. 하지만 단체종목인 경우, 수십명 선수들의 교육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도, 그럴 역량도 지도자들에게 없는 게 사실이다.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운동선수들의 가치는 입상 성적으로 반영되었고, 학교는 운동선수들이 지성과 감성의 발달을 추구하는 곳이 아닌, 단지 올라갈수록 좁아져만 가는 국내 스포츠시스템에서 거쳐가는 곳으로 전락했다. 일차적인 목표가 입상 성적이다 보니 그 부정적인 영향력은 자연스레 지도자에게로 이어지고, 매년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지도자의 성격상 승리 위주의 훈련과 운동 중심의 일상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여기에 이름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이라는 학부모의 요구까지 더해진다. 이런 이해관계에서 궁극적인 피해자는 학습권·교육권을 잃어버린 운동선수들이다.
결국 운동선수들의 학업적·지성적인 발전과 성장은 학교·학부모·지도자 대신 숙소라는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선수들 자신에게 맡겨져온 셈이다. 교육의 참의미는 자신으로 하여금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운동을 하는 것이,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게 아니라 운동의 길로만 들어서는, 즉 미래의 목표가 선택의 여지없이 운동으로 단일화되는 국내의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승부조작에 대처하는 스포츠계의 처사에 공감하는 바이긴 하지만 문제의 근본을 주시하지 않고서는 이번 처사 또한 일시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인 시스템과 교육적 기회의 결여가 하나의 부정적인 결과로서 보여지고 있을 뿐, 어찌 승부조작 파문이 반세기 동안 지속해온 엘리트 스포츠의 유일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