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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열심히 했지 말입니다

한국 축구와 그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바로 ‘열심히’다.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의 인터뷰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이 단어는 선수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차원적인 노력과 최선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열심히’를 통해 한국 사회가 고속성장을 이루었듯이, 한국 체육 역시 틀 안에서 육성되어온 선수들에게 ‘열심히’를 요구해왔다. 그 결과 국제대회에서 거둔 메달과 성적을 기반으로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평균소득의 증가와 선진국 수준의 경제지표가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한국 체육 역시 선수들의,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왔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냉전시대의 스포츠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의 정치적 방도였다. 국내 체육계는 승리, 입상 등의 성과 지향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기량 향상만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냉전시대의 유물은 아직까지 국내 스포츠를 지탱하는 뿌리로 남아 있다. 유소년기의 학생선수들에게는 학습권뿐 아니라 축구가 가진 가치구현을 통한 인성과 지성의 발전마저 줄곧 경시되어 왔으며, 지금도 입상 성적만이 대학 입학의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지극히 결과 중심적인 관습과 제도로 인해 운동선수들은 유소년 시기부터 자신의 종목에서 ‘열심히’를 통해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고, 지도자 역시 성과를 위한 운동 능력 향상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열심히’는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운동이 자기 삶의 유일한 최종 목적이 되는 것임을 함축한다. 개인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수단이라는 의미는 사라진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도, 돌아올 길도 없다는 비관적인 메시지만 남는다.

축구는 강력한 문화 콘텐츠이자, 효과적인 교육재다. 하지만 국내 축구계는 문화 콘텐츠의 화려함만을 중시하고 축구가 가진 본질적인 교육적 가치를 경시했다. 화려함의 중심에 서는 유일한 길은 승리와 성적이라는 그릇된 가치관 속에서 축구의 교육적 가치인 스포츠맨십, 경쟁 그리고 체육활동이 가져오는 인성과 지성의 성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얼마 전 슈틸리케 국가대표 감독이 국내 초등학교 축구경기를 관전했다. 축구 저변 확대 차원에서 진행된 이 이벤트의 핵심적인 의의는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등록된 축구 인구가 3만2천여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일본에서는 100만명이 축구를 통해 자기성장을 꾀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이런 차이는 축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소년 체육에 대한 철학과 이를 지지하는 사회적 인식이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축구가 가진 강한 교육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강조할 때라야 이 사회에 만연한 ‘운동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인식과 승리를 위한 기능 향상만을 중시하는 엘리트 스포츠 문화에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성적에 기반한 입시정책은 승리 지상주의와 축구의 저변 축소를 야기할 뿐이다. 승점 3점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을 통한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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